산업재해로 인한 사망 또는 장애, 질병으로 인해 재해자 본인과 가족이 겪어야 하는 고통은 말할 필요가 없거니와, 국가와 기업이 부담하여야 할 사회적 비용 또한 막대하므로 산업재해 발생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을 적극적으로 강구하고 실천하여야 한다는 명제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떠한 방안을 택하는 것이 가장 재해예방에 효율적일지에 대해서는 노사, 정부 모두 각자의 입장이 있을 것이고 이들은 서로 차이를 보일 수 밖에 없다.
정부와 노동계는 형사처벌을 재해예방을 위한 강력한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산업재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제고됨에 따라 산업안전보건법위반에 대한 형사상 제재의 방향과 수위도 상당한 변화를 겪고 있다. 최근 산업재해와 관련한 형사사법 영역에서 주목할 만한 경향은, 처벌 수준 상승, 대표이사 등 경영책임자 입건 확대, 도급인 책임 확장으로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최근, 다중 사망 사고인 경우에는 합의가 이루어진 경우에도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경우가 적지 않고, 유족과 합의가 성립한 1인 사망 사고에서도 예전과 달리 구약식이 아닌 구공판과 징역형 구형(경우에 따라 집행유예 구형)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사고 이후 유족과의 합의를 신속히 추진하고, 사고 초기 안전보건조치위반과 사고의 인과관계, 안전보건조치 불이행에 대한 비난가능성의 정도 등을 조속히 파악하여 유리한 증거와 정상을 수집함으로써 변론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노동계는 지속적으로 경영책임자 즉 대표이사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안전보건조치의 강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하여 왔고, 근로감독관들 역시 재해가 발생한 경우 대표이사 또는 고위 임원 입건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안전보건총괄책임자 제도를 두어 사업장을 총괄하는 자에게 안전보건에 대한 총괄적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는 우리 산업안전법제에 기인한 바도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대표이사에 대한 입건처벌 가능성(솔직히는 소환 가능성)이 ‘자백’을 이끌어 내는 강력한 수사수단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대표이사 처벌 가능성이 말그대로 ‘가능성’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대표이사에게 산업재해에 대한 형사책임을 묻는 범위가 확장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 현장에 상주하지 않거나, 대형 사업장으로서 대표이사가 구체적인 안전보건조치에 대해 인지하기 어려운 경우에도 대표이사가 기소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는데, 이는 검사 및 근로감독관이 종래에 비하여 안전보건조치 이행에 대한 구체적인 관리감독의 가능성과 의무를 상당히 넓게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현행 산업안전보건법만으로는 대표이사 등 경영책임자에게 형사상 책임을 지우는데 불완전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고, 그 연장선에서 중대재해 발생 시 경영책임자에 대해 광범위한 형사책임을 인정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기도 하다. 위와 같은 입장이나 법률안에 대해서는 여러 측면에서 합헌성 여부와 제정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이나, 위와 같은 입법 시도 자체가 산업재해에 대한 대표이사의 책임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현재의 기조를 반영한다고 할 것이다.
산업재해 발생 시 대표이사가 형사책임에 노출되는 상황은 기업 운영에 있어 심대한 장애요소가 될 수 밖에 없으므로, 이에 대한 신중한 대비가 필요함은 부인할 수 없다. 최우선 과제는 당연히 사업장에서의 안전보건조치의 충실한 이행이고 이를 위한 환경과 기업문화를 조성하는 것이겠으나, 사고를 100% 방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사고 발생에 대비한 시스템 정비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즉, 대표이사가 직접 수행할 안전보건 관련 의사결정 범위를 세심하게 결정하고, 결정된 범위에서는 지속적으로 이를 점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현실적인 관리감독이 불가능함에도 위임전결 규정에 대표이사에게 안전보건 관련 사무(안전보건시설에 대한 지출 포함)에 대해 광범위한 직접결재를 규정하게 되면 사실상 관리감독이 불가능한 영역에 대한 형사책임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필요하고도 가능한 범위에서 대표이사의 직접 결재 범위를 조정하고, 권한 위임을 통해 현장에서의 충실한 안전보건 조치 이행이 가능하도록 R&R을 재정비하여야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도입한 대표이사의 안전보건계획 수립 및 이사회 보고의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표이사 책임 강화를 목적으로 도입된 제도인 이상, 안전보건계획에 포함된 안전조치에 대해서는 대표이사가 그 이행을 점검하고 관리감독할 의무가 있다는 논리가 구축될 가능성이 다분하고 결과적으로 산업재해에 대한 대표이사 입건처벌 근거로 활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안전보건계획을 적정하게 수립하되 그 이행을 점검할 수 있는 조직과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으며, 그 이행 점검 결과에 대해서는 기록으로 남겨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야 한다.
금년부터 시행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은 종래 제한적인 조건 하에서만 적용되던 도급인의 안전보건조치의무를 크게 확대하여 수급인 소속 근로자에 대해서도 자신의 근로자와 거의 동일한 수준의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조치의무 측면 외에 도급인의 범위 또한 확장되어 건설공사발주자를 제외하고 이른바 '원청'으로 불리울 수 있는 다양한 사업주, 예를 들어 수익형 부동산 운영을 목적으로 하는 리츠 회사, 기계설비의 수리를 위탁한 공장 운영주체 등도 도급인으로서 수급인 소속 근로자에 대한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부담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구체적으로 도급인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확립되어 있지는 아니한 상황이나, 리스크 최소화 측면에서 사업 내용을 재검토하여 도급인으로서 책임을 부담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선제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개정 전 산업안전보건법은 도급인에게 부여된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여 수급인 소속 근로자가 사망한 경우, 안전보건조치 의무 불이행에 대해서 처벌을 하되, 사망의 결과에 따른 가중처벌은 수급인에 대해서만 이루어졌다. 그러나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은 도급인도 가중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그 법정형도 7년 이하의 징역 1억원 이하의 벌금(5년 이내 재범의 경우 1/2 가중)으로 매우 높다는 점 또한 유념하여야 할 부분이다.
산업안전보건법위반에 대한 형사적 제재는 책임의 상향 확대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형사처벌에 있어 상급자 또는 상위사업자에게 그 책임을 추급하는 것이 옳은 방향인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이와 같은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각 사업장의 안전보건조치 이행에 대해 종래보다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입함으로써 잠재 리스크를 최소화하여야 하며, 개정된 법령에 부합하도록 사내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사고가 발생한 경우 초동 단계에서부터 적절한 전문가의 조력을 통해 불필요한 범위에 까지 수사와 처벌이 확대되지 않도록 세심히 관리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